운명을 말한다

3. 결정되어 있는 운명

금린학당 2010. 8. 29. 10:41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해 간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나는 운명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 모두 운이 좋은 사람들 얘기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아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아진다. 잠깐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극복해 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절체절명의 어려움에 처해도 용하게 빠져 나갈 구멍이 생기고 묘한 인연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몇번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삶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정해진 운명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모두 제 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최선을 다해서 살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면 불행하게 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 노력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명을 부지하고 사는 것 자체가 엄청난 노력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모두 다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살고 있다. 보통 평균적인 사람으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비슷하게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부자로 살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산다. 어떤 사람은 재벌가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빈민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큰 병 한 번 앓지 않고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 똑같이 출발했는데 어떤 사람은 장관이 되고 어떤 사람은 중견 공직자로 퇴임한다.

     같이 출발했는데 어떤 의사는 큰 종합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어떤 의사는 그 병원의 100 분의 1도 안되는 동네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거의 비슷한 조건에서 비슷하게 노력했는데도 차이는 분명하게 난다.

     병을 치료하는 의사도 병에 결려 천수를 다 못하고 죽고, 주식투자 전문가도 잘못 투자해서 처갓집 재산까지 날린다. 맘 먹은 대로 의지 대로 운명을 개척해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말하는 그 시점까지의 운이 좋았을 뿐이다. 자신이 특별한 노력을 하고 자신의 능력이 특별히 뛰어나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 지독한 불운에 시달려 본 사람은 그런 말을 쉽게 못한다. 고생을 해 본 사람들은 사람 마음대로 세상일이 쉽게 풀려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노년에 접어 든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삶이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우여곡절을 겪고 거친 삶의 파도와 싸우며 상쳐입고 내동댕이쳐지며 어렵게 어렵게 인생의 길을 걸어 왔다고 회고한다.

 

     명리학에서 운이 좋다는 것은 타고 난 사주팔자의 구성이 좋아야 하고 또한 운의 흐름이 좋은 것이다. 타고 난 사주팔자를 명(命)이라 하고 운의 흐름을 운(運)이라 한다. 명은 태어난 년, 월, 일, 시에 의해 결정된다. 옛사람들은 시간을 육십갑자(六十甲字)라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부호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서기 1592 년은 임진년(壬辰年)이다. 그 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전쟁이 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고 그 사건을 명명했다. 그런데 임진(壬辰)이란는 부호에는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의 함의가 담겨있다.

     어떤 사상(事象)이나 물상(物象)의 운명적인 구조는 그 사상이나 물상이 시작되거나 탄생하는 시점의 년 월 일 시의 육십갑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을 네 기둥 즉 사주(四柱)라고 한다. 한 기둥에 천간(天干)과 지지(地支) 두 글자가 있어 모두 8 자가 되어 팔자(八字)라고 한다. 이 사주팔자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사주에서는 태어난 날의 천간과 지지를 일주(日柱)라고 하는데, 사주의 중심이 되는 기둥이다. 일주와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바뀌는 육십갑자를 비교해서 그 함의를 해석하면 그 시간대에 생길 수 있는 사건이나 상황을 예견할 수 있다.

     1392 년 7 월 병신(丙申)일에 조선이 건국되었으므로 조선을 대표하는 일주는 병신(丙申)이 된다. 병(丙)은 오행 중 양화(陽火)를 의미한다. 그런데 임진년의 임(壬)은 양수(陽水)가 되어 물로써 불을 끄는 운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오행은 불인데 물이 강해지는 운을 만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개개인의 운명도 같은 방법으로 알 수가 있다. 사주팔자와 운의 흐름은 태어나는 순간 결정되어 진다.이미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는 결정되어진 운명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순명편(順命篇)에 보면 결정론적인 운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공자 왈, 죽고 사는 것은 명에 있고 부귀는 하늘의 뜻이다.  子曰死生有命富貴在天'

     '모든 일은 이미 그 분수가 정해져 있는데 덧없는 인생들이 부질없이 스스로 바쁘다. 萬事分已定浮生空自忙'

     '열자 왈, 모자라고 귀머거리에 고질병 있는 벙어리도 큰 부자요 지혜롭고 총명한 자도 가난하게 산다. 사주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부귀는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운명으로 결정된다. 烈子曰痴聾痼啞家豪富 智慧聰明却受貧 年月日時該載定 算來由命不由人'

     여기에서 천명(天命)은 모두 운명을 의미한다.

     또한 명심보감 순명편에는 이런 글도 있다.

     '때가 되니 바람은 등왕각으로 불고 운이 다하니 벼락이 천복비에 떨어졌다. 時來風送騰王閣 運退雷轟薦福碑'

     당나라 천재 시인 왕발(王勃)은 등왕각 연회에 초청 받았다. 그러나 기별을 늦게 받아 도저히 연회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등왕각은 당 태종의 동생 등왕(騰王)이 강서성 양자강 가에 세운 누각으로 귀족들의 연회가 자주 열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마침 바람이 등왕각 쪽으로 불어 왕발은 하룻밤만에 남창 700 리 뱃길을 달려 등왕각 연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는 대표작인 등왕각서(騰王閣序)를 지어 널리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송나라 때의 어느 가난한 선비는 강서성에 있는 천복사비(薦福寺碑)의 탁본을 부탁받았다. 당시 천복사 비에는 구양순의 글씨가 새겨져 있어 그 탁본을 귀하게 여겼다. 많은 돈을 받기로 하고 수천 리 길을 걸어  어렵게 천복사에 도착했지만 도착하기 전날 천복사비가 벼락을 맞아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결국 선비는 돈을 벌기는 커녕 오가는 비용만 손해봤다.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의 분수는 결정되어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은 절대 가질 수 없고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에도 절대 도달할 수 없다.그것은 노력과 실력만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자기의 분수에 넘치는 재산이나 지위를 누리게 되면 반드시 불행을 겪게 된다.  대부분의 재벌가들을 보면 자식을 사고로 잃는 경우가 많았다. 억만금이 있다 한들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아픔을 보상해 줄 수 있을까? 재(財)는 대단히 유용하고 대단히 위험하다. 재산이 많아지는만큼  반드시 걱정도 많아진다. '천석군 천 가지 걱정 만석군 만 가지 걱정' 이라는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 재(財)는 인간을 감각에 탐닉하게 만들고 정신영역을 황폐화 시킨다. 재가 가지고 있는 그런 요소들로 인해 재앙이 만들어진다. 재를 잘 쓰면 정말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으나 재를 많이 가진 사람이 그것을 제대로 운용하기는 아주 어렵다. 그래서 분수에 넘치는 재산은 사람을 파멸로 이끈다.

     높은 지위는 권력을 보장한다. 명리학에서는 이를 관운(官運)이라고 한다. 분수에 넘치는 관운은 관재(官災)를 낳는다. 감옥에 가거나 병을 얻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다.권력 주변에서 맴돌던 많은 사람들이 감옥을 가기도 하고 불의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던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권력은 양날의 칼이다. 남을 죽이거나 다스릴 수 있지만 그 칼에 자신이 상처입거나 죽을 수도 있다.

     나의 후배 중에 농림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 있었다. 원래 그는 고향에서 소규모 축산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한우를 길렀는데 여러번  실패를 해서 주변에 큰 빚을 지고 있었다. 지방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했지만 소를 키우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정부의  축산정책도 오락가락 하고, 축산물 수입이 확대되면서 축산농가들의 피해가 커졌다. 대표적인 피해자인 그는 농민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결국 어떤 농민 단체의  대표를 맞게 되었다. 시민단체라는 것들도 규모가 커지면 결국 권력지향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시민단체나 노동단체의 핵심 인사들이 제도권의 권력을 선택해 들어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그들이 권력지향적인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한 시민단체의 핵심 인사로서 상당한 힘을 갖게 되었고 마침 자신의 임기 중 대선(大選)이 있었다. 여러 대선 후보들이 그를 접촉해 왔고, 자신이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그는 농림부 장관에 발탁되었고 2 년여에 걸쳐 우리나라 농림행정을 이끌었다.

     시골에서 소 몇마리 키우던 사람이 농림부 장관이 되었다. 아무리 정무직이라지만 너무 파격적인 인사(人事)였다. 사실 장관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출세이고 가문의 영광이고 출신 지역의 큰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어려운 고시를 통과해 수 많은 교육과 자기계발과 경쟁과 행정경험을 쌓은 관료들도 언감생심 꿈의 선망인 장관 자리를, 소 키우다가 시민운동 하던 사람이  차지했다.

     그런데 그는 그 장관직을 훌륭히 수행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젊은 나이에 고시에 합격하고 유학도 다녀 온 그런 똑똑한 사람들 보다 훨씬 뚝심있게 청렴하게 농림행정을 잘 이끌었다. 농민단체 대표였던 그의 경력 때문에 한미FTA 체결 시 농민들의 강한 반발을 무마하는 역할도 효율적으로 해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그가 고향으로 내려가 조용히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선거정국의 집권여당 사무총장을 맡게 되었다.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정치라는 권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자신을 던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걱정을 하게 되었다.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었다. 30 여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동향인으로서 또한 동문으로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50 대 초반에 삶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제 삶의 여유를 찾고 삶을 즐길 수 있는 나이에 생이 끝나버렸다. 분수에 넘치는 관운을 누렸기 때문에 명(命)을 재촉한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자신의 운수를 보고 진퇴를 결정했다. 때가 오면 세상에 나가 자신의 뜻을 펼치고 운이 쇠하면 삼가하고 물러나 조용히 독서하고 수행하며 자신을 가다듬었다. 권력욕  명예욕은 대단히 큰 유혹이다. 그러나 이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불을 보고 뛰어 드는 부나비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알아서 처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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