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특히 세속적인 부귀영화는 운명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전생에 자신이 쌓아 놓은 업력에 의해 운명은 결정되어진다. 선업을 많이 쌓았으면 좋은 일들이 많을 것이고 악업을 쌓았으면 좋지 못한 일들이 많을 것이다. 윤회를 바탕으로 삶이 연속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운명적인 현실을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세속적인 부귀영화는 지금 내가 갈망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전생의 삶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음 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뿐이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행운을 주변에 나누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즐겁게 해주면 다음 생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열차를 타고 가는 것으로 비유하면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표는 이미 전생에 예매해 놓은 상태이다. 전생의 예매에 의해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KTX를 타고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처음은 KTX를 타고 출발했으나 대구 쯤에서 무궁화 열차로 갈아 타게 예약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처음은 무궁화 열차로 출발했는데 대전 쯤에서 KTX로 갈아 탈 수도 있다. 이렇게 열차는 우리가 전생에 예매한대로 타고 갈 수 밖에 없다. 예매하지 않은 열차는 탈 수가 없다. 우리가 전생에 무궁화 열차를 예매했슴에도 불구하고 KTX 타고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질시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는 안된다. 상당한 이유가 있어 자신이 지금 무궁화 열차를 타고 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KTX와 무궁화호를 비교하며 끊임없이 불평하면 그는 인생 전부를 불평과 불만으로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불평과 불만을 표출하는 에너지를,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와 사랑으로 바꾼다면 그의 삶은 훨씬 윤택해질 것이고 다음 생의 좋은 열차를 예매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첫째 조건은 지금의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타고 가는 이 열차가 내게 가장 합당한 열차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억지로 인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자신보다 더 좋은 열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치루었기 때문에 그런 안락함을 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그것은 전생의 삶에 의해 결정되어진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억울함이 사라진다. 나는 지금 뼈빠지게 노력하는데도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한탄하지 말라는 얘기다. 태어날 때부터 차이를 가지고 태어난다. 미국이나 서유럽의 부유한 국가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아프리카의 오지나 남미의 밀림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어떤 사람은 북한에서 태어나 굶주림에 시달리고 어떤 사람은 남한에서 태어나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재벌가에서 태어나 평생을 돈 걱정 없이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얼마나 불공평한 세상인가. 전생을 인정하지 않고 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너무나 불합리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전생과 업을 인정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전생과 업을 인정해야 운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번 생이 중요한 것이다. 주변을 살피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안위와 안락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결국은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욕심많고 교활하고 비열한 사람이 잘 살고 있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자손들도 출세하고 가문이 번창한다. 주변 사람들의 피땀을 짜내어 자신은 부귀영화를 누린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세상에 무슨 이치가 있고, 도덕과 윤리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자신의 복을 이번 생에 다 까먹고 있는 것이다. 다음 생은 자신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 그만큼의 고통에 반드시 시달리게 된다. 또한 그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현생에서도 내부의 어느 곳엔가 곪아 터져 악취를 풍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죽음까지를 자세히 살펴 보면 대부분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죽어 간다.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의 수족 노릇을 하며 살던 어떤 사람은, 일제가 망한 후 일본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자 그 사람들의 재산을 교묘하게 자기 재산으로 만들었다. 수만평의 땅과 시내 요지의 적산가옥들이 그의 소유로 탈바꿈했다. 허름한 집들이 수백 채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 집들에서 장사를 하거나 세들어 살았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세입자들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조금만 월세가 밀리거나 하면 바로 쫒겨났다. 법과 폭력을 앞세워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위협했다. 그는 안하무인이었고 성질도 불같아서 주변 사람들은 그만 보면 움츠러들었다. 아내 외에 첩이 있었고 다른 여자들도 여러 명 있었다. 그는 신체도 건장했고 언행도 거침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부러워 했다. 그런데 그렇게 거침없이 살던 그가 갑자기 뇌졸중을 앓게 되어 사지가 마비되고 말았다. 그 때가 그의 나이 50대 후반이었다. 골방에 드러누워 대소변을 받아내는 생활을 3년여를 하고 결국 죽었다. 사지가 마비되어 골방에 드러누워 있는 3년 동안 그는 내내 울기만 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찾아 오면 울기부터 했다고 한다. 그렇게 거침없이 세상을 휘저으며 살았던 자신이 골방에 처박혀 식구들의 구박을 받으며 똥오줌까지 자신이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지옥과 같은 3년을 보내고 죽었다. 그런데 그런 지옥과 같은 3년의 세월 때문에 그는 어느 정도 정화되어서 죽었다. 그런 속죄의 기간이 있어서 그에게는 천만다행이었던 것이다. 온갖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죽음마저 편안하게 한다면 그의 다음 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처절한 고통의 연속일 것이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고통을 통해 어느 정도 업장을 소멸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업장을 어느 정도 덜어 낼 기회도 없이 갑자기 맞이하는 죽음이 가장 불행한 죽음이다. 그런 죽음은 자신의 악업을 그대로 고스란히 다음 생으로 가져가게 된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고통이나 장애는 아무런 이유없이 찾아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고통을 억울해 해서는 안된다. 할 수만 있다면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비교를 통해 박탈감을 느낀다. 비교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자신이 충분히 누리고 있는데도 자신과 비교해서 우위에 있는 사람을 보면 상대적인 결핍을 느끼게 된다.
차가 없어 대중교통만 이용하는 사람은 고물차라도 차만 한 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운 여름 뙤약볕 아래서 버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추운 겨울 종종 걸음으로 지하철 계단을 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기동력이 있어 원하는 곳을 쉽게 편안하게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다가 중고차를 하나 장만하면 한 동안 그 편리함을 만끽하게 된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잦은 고장과 열악한 편의시설 등의 불만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다. 새차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마음은 점점 불편해진다. 그러다가 새차를 갖게 되면 좀 더 큰 차가 자꾸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큰 차를 가지면 그것보다 비싼 외제차를 타는 사람이 부러워진다. 욕심은 끝이 없고 우리는 늘 결핍감에 시달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그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나는 지금 부산 기장 바닷가, 담 밑에서 파도가 철석이는 집에 살고 있다. 집은 세 칸짜리 기와집으로 방 둘에 부엌 하나인 한옥이다. 이곳은 조그만 어촌으로 생활편의시설은 아무것도 없다. 바다가 가까워 파도가 많이 치는 날에는 짜디 짠 바닷물의 포말들이 안개처럼 집안을 파고 든다. 금속으로 된 가재도구들은 금방 녹이 슨다. 수 년 전 태풍 매미가 몰아쳤을 때는 집 앞 돌담이 다 무너지고 마당까지 파도가 덮쳤다. 다행히 방까지는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집 앞에 주차해 놓았던 승용차는 파도에 휩쓸려 나가버렸다.
우리 집의 담장은 전부 돌담이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면 담이 잘 무너진다. 돌담이 무너지는 소리는 마치 우레 소리 같다. 집안에 벌레는 얼마나 많은지, 방바닥에 설탕 알갱이 몇개만 떨어져 있어도 조그만 개미들이 새까맣게 몰려든다. 모기, 개미, 쥐며느리, 지렁이, 귀뚜라미 등 곤충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때는 담구멍으로 잽싸게 쥐가 도망가기도 한다. 추운 겨울 밤, 화장실을 가려면 옷을 두껍게 입고 방문을 열고 나가 집 뒤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불편한 것을 열거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집에서의 생활을 즐긴다.
우선 집이 좁아서 난방비가 적게 든다. 한옥의 운치가 살아있어, 규격화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 한다. 내 서재에서 앞문만 열면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고개만 들면 바다다. 작은 어촌이라 무척 조용하다. 바다가 조용한 날은 작은 물결 소리와 갈매기 우는 소리만 가끔 들릴 뿐이다. 인공적인 소음은 거의 없다. 집 주변에 조그만 채소밭도 일구어 상추, 고추, 배추, 고수나물, 파 등을 심어 놓고 유기농법 흉내를 내면서 가꾸어 식탁에 올린다. 작년에는 내가 강의 나가는 학교의 곽교수께서 곰취 모종을 줘서, 매화나무 그늘에 심어 두고 그 향기로운 잎을 수시로 따서 쌈을 싸 먹었다.
나는 꽃을 좋아해서 마당에 꽃을 많이 심었다. 종류만도 100가지에 가까울 것 같다. 5월과 6월은 우리집이 꽃으로 넘쳐난다. 향기와 색으로 현란해진다. 변두리의 불편한 한옥에 살지만 이 집에서의 나의 생활은 행복하다. 세상의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행복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여러 번 강조했지만 많이 가지고 높은 지위에 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KTX만 타고 간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KTX 최고급 좌석을 타고 간다고 하더라도 옆 사람과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간다면 서울까지의 3시간이 지옥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가더라도 즐겁게 간다면, 서울까지 8시간이 넘게 걸리더라도 그 여행은 행복할 것이다. 나는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농담처럼 물어본다. 로켓트를 타고 간다는 사람, 축지법을 한다는 사람, 초음속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하는 사람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 이라고 대답한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한 달 동안 서울까지 걸어서 가더라도 여행이 끝나는 것이 아쉬울 것이다. 아무리 큰 부귀를 누려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충분히 행복하다면 더 이상의 부귀영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지금 여기에서 만족하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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