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말한다

19. 암(癌)

금린학당 2010. 10. 9. 22:21

     암(癌)이라는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병 역(疫), 품수 품(品), 뫼 산(山)으로 나눌 수 있다. 품(品)이 산(山)처럼 많은 병이라는 뜻이다. 품(品)자에 암의 비밀이 숨어 있다.

     먼저 품(品)자는 입 구(口)자가 세 개 모여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입으로 말을 한다. 말을 통해 의사를 전달한다. 말의 기록이 문자가 된다. 문자를 통해서도 의사 전달을 할 수 있으나 문자도 결국 말이다. 그런데 말이 너무 많으면 탈이 난다.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말 중에서도 쓸 데 없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거의 100 퍼센트 암에 걸린다. 가장 쓸 데 없는 말이 자기자랑이다. 노골적으로 자기자랑 하는 사람도 있고 교묘하게 자기자랑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얘기만 한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작은 일들을 교묘하게 각색해서 끊임없이 얘기한다. 자기 자신과 주변 가족들의 얘기를 위장하고 미화하고 각색해서 떠벌인다. 듣는 사람들이 지루해서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면 그 화제와 연관해서 또 자신의 얘기를 끼워 넣는다. 대화하는 시간의 거의 전부를 자기 얘기로 채운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말 할 기회가 없다. 나중에 보면 내내 그 사람 일상에 관한 얘기만 들은 꼴이 된다.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얘기가 끼어들 틈이 없으면 바로 옆사람을 집적여 그 사람에게 자기 얘기를 한다. 이런 사람들은 공통의 화제에 집중하지 못한다. 남의 얘기를 차분하게 듣고 있지 못한다.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끈덕지게 주절댄다.

     이런 사람이 대화의 자리에 끼어 있으면 화제는 분산되고 산만해진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 사람이 말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지루해 하면서 듣고 있다. 대화를 자신이 주도해야 직성이 풀리고, 다른 사람들이 말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이런 사람이 암에 잘 걸린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암 조심하라고 경고해야 한다. 혹시 자신이 그런 부류에 속하면 자기자랑 그만하고 말수를 줄여야 한다.

 

     우리는 입을 통해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으면 암을 유발한다. 과잉 영양이 암세포를 증폭시킨다. 특히 단백질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암 발생 확률이 높다고 한다. 단백질 중에서도 동물성 단백질이 그렇다.

     현대인들은 고기를 너무 많이 먹는다. 거의 매일 고기를 먹는다. 60년대나 70년대만 해도 일반 서민들은 일년에 겨우 몇번 고기 맛을 볼 정도였다. 그것도 고깃국을 끓여 먹거나 고기를 넣고 찌개를 끓여 먹는 정도였지 지금처럼 고기만으로 배를 채우는 일은 없었다. 요즘은 회식을 하거나 하면 주로 고기를 먹는데 고기로 배를 채우고 밥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넘쳐난다. 비만을 걱정하고 다이어트 산업이 호황을 누린다. 수십만원, 수백만원을 지불하고 굶으러 들어간다. 과잉 영양이 원인이 되어 너도 나도 성인병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 암이다. 입 구(口)자 3개와 뫼 산(山)은 산더미처럼 많이 먹는다는 의미이다. 많이 먹으면 안된다. 많이 먹으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품수 품(品)자와 뫼 산(山)은 품위를 산처럼 많이 지킨다는 의미이다. 그야말로 폼생폼사 한다는 뜻인데, 그러다가는 암에 걸리기 쉽다.. 너무 점잖은 척, 너무 고결한 척, 너무 도덕적인 척, 너무 모범적인 척 하다보면 암에 걸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노심초사하다 보면 늘 긴장해 있게 되고, 긴장은 몸을 경직시킨다. 몸이 경직되면 기혈이 막힌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너그럽지 못하다. 자신이 모범적이므로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판단한다. 그래서 성격이 원만하지 못하고 까다로워진다. 그런 이유로 늘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므로 일탈을 못한다. 편하게 자신을 이완시키지 못한다. 말도 함부로 못한다. 험한 말도 못하고 욕도 못한다. 분노나 짜증을 속으로만 삭인다. 겉모습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하므로 늘 가면을 쓰고 산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 이것이 암이라는 병을 불러 들이는 생활태도이다.

     우주는 음양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음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이 양이라면 악은 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악이 없으면 악의 상대적 개념인 선이 존재할 수 없다. 마치 빛은 그림자가 없으면 빛을 인식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상에 빛만 있으면 우리는 빛이 있는 줄 모르게 된다. 그림자로 인해서 빛이 드러난다. 선은 악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악은 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 인간도 음양의 범주에 들고, 선악을 모두 갖추고 있다. 착함, 고상함, 현명함 등등 긍정적인 면과 사악함, 우둔함, 비천함 등등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경우와 상황에 따라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번갈아 표출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안범에게도 인간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고,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모범의 표상이 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비인간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세상의 평가가 달라진다.

     우리는 우리 속에 내재되어 있는 양면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음양이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하고 현명하고 고상한 그런 좋은 면만 추구하고 부각시킨다. 다른 측면인 사악하고 비천하고 우둔한 그런 나쁜 면은 애써 부정하고 감추려고 한다. 그러나 감춘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감추고 부정하면 오히려 폭발하게 된다. 음양이 같이 있는데 양만 추구한다고 음이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양이 강해지는만큼 음도 강해진다. 그래야 조화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쪽으로 치우쳐 균형이 깨지면 파괴가 일어난다. 전 지구적으로는 자연 재해가 생기고 사회적으로는 전쟁과 폭동이 일어나고 개인으로는 흉악한 범죄에 노출되거나 치명적인 질병이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 즉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바로 음양을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노자 도덕경에 '현하려 하지말라 (不尙賢)' 는 말이 나온다. 현명해지려고 하지 말라는 얘기다. 즉 착하고 고상하고 현명한 양의 측면만 강조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음을 무시하고 양만 추구하다 보면 우리는 늘 결핍감에 시달리게 된다. 착하고 성실하고, 사랑과 자비심으로 넘쳐나고, 겸손과 이타(利他)를 생활화 하고, 고상하고 현명해지는 '상현(尙賢)' 을 추구하지만 실제 우리는 나쁘고 게으르고 미워하고 성내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천하고 우둔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음적인 상태를 벗어나려고 애쓰다 보면 우리는 갈등과 결핍감과 실망감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는 쉴 수가 없고 안정이 되지 않는다. 편안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음적인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갈등하지 않고, 자학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게 된다. 자신에 대해 관대해지고 남에게도 관대해진다. 그러면 편안해지고 마음이 쉴 곳이 있게 된다. 마음이 쉴 곳을 찾으면 몸의 경직도 풀려 편안해진다.

     승찬(僧璨)스님이 쓴 '신심명(信心銘)' 의 첫머리에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至道無難) 오직 간택하지 않으면 된다(唯嫌揀擇), 라는 말이 나온다. 간택이라는 말은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만 선택한다는 뜻이다. 즉 음양에서 양만 취하고 음은 버린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극한 도, 즉 가장 행복한 상태는 음양이 조화를 이룬 상태라는 것이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양만 추구하고 음을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도덕경의 '불상현(不尙賢)' 과 같은 말이다.

     성경에서는 이브가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 인간의 원죄가 된 것이다.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것은 선악의 분별심이 생겼다는 뜻이고 음양의 조화가 깨졌다는 의미이다. '간택' 하고 '상현' 하는 심리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양만 추구하고 음을 배제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음은 아무리 배제하려고 해도 절대로 배제되지 않는다. 우리가 양을 추구하는 한 음은 배제될 수가 없다. 우리가 음을 배제하려고 애쓰는 순간 우리는 균형을 잃고 갈등과 투쟁과 고통의 심연으로 빠져든다.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우리는 낙원에서 추방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음적인 부분을 잘 들여다 보고 그것이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속의 음적인 부분을 용납하고 또한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편안해지고 조화로워지고 건강해진다.

 

     암(癌)에 걸리지 않으려면 쓸 데 없는 말, 특히 자기 자랑 너무 하지 말고, 많이 먹지 말고, 너무 모범적으로 살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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