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말한다

20. 아름다운 노년

금린학당 2010. 10. 11. 19:55

     노쇠(老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래서 특별히 불행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그러나 늙어가는 데 대한 저항감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노쇠를 큰 불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늙어가는 것을 한탄하고 기를 쓰고 젊게 보이려고 한다. 최근에 어느 유명 여가수의 사진을 신문을 통해 봤는데, 70세가 넘은 나이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 팽팽한 얼굴,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취재 기자의 표현에 의하면 거의 30대 수준의 외모였다고 한다. 그 가수는 자신의 젊어 보이는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전부를 외모 가꾸기에 쏟아붓고 있는 것 같았다.

     청춘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다.

     청춘은 화양연화(花樣年華)의 꽃 같은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청춘도 한 때일 뿐 세월은 살같이 흘러 어느듯 늙음이 찾아온다.

     청춘 혹은 젊음은 그것 자체로 축복이고 아름다움이다. 그 축복과 아름다움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지는 선물이고 특권이다. 탱탱한 몸매와 윤기있는 피부, 싱그러운 미소와 생기발랄한 몸짓들은, 인생을 조망할 수 있는 나이 쯤에서 바라보면 부러움의 대상이고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하는 회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젊음은 누구에게나 선물이고 축복이지만 늙음은 기피의 대상이고, 사람에 따라서는 저주와 불행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마음은 20대의 그 활발하고 풋풋함 그대로인 것 같은데 몸으로는 쇠락하고 둔한 노화의 진행을 체감할 때 사람들은 대부분 나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지금은 의학이 발달하고 영양 상태가 좋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노화의 양상은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다. 옛날 우리 아버지 세대의 50대는, 겉모습이 거의 지금의 70대 비슷했다. 거친 피부에 주름은 쪼글쪼글하고 대부분 이빨은 몇개씩 빠져 있었다. 지금의 50대 후반인 사람들의 겉모습은 아직 팽팽해 보인다. 그러나 모두 뱃살이 늘어나고 눈은 침침해 돋보기를 끼어야 신문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약간 귀가 어두운 친구도 있다. 기억력의 현저한 저하를 겪으며 치매에 대한 공포를 서서히 느끼고 있다.  열심히 운동도 하고 식이요법에도 관심을 가지며 나름대로 노화에 대처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의 50대는 겉모습이 크게 늙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자들의 경우 성형 의술의 발달로 정말 깜짝 놀랄만큼 젊은 외모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일전에 내게 상담을 하러 왔던 어느 여자의 경우, 날씬한 큰 키에 긴 파마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다. 주름 하나 없는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30대 중반 쯤으로 나이를 짐작했는데 실제로는 50대 중반이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목소리 뿐이었다. 목소리는 성형을 할 수 없었던지 걸걸한 늙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부모의 유산이 많아 경제적으로는 대단히 부유한 편이었는데, 지적(知的) 분위기는 조금도 없고 세속적인 욕망을 좇아가는 속물 성향의 사람이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데 돈과 남자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나이 든 여자가 너무 젊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약간 생뚱맞고 징그러운 느낌이 들었다. 가면을 쓴 사람과 마주 앉은 것 같았다. 편안하고 여유롭고 안정돼 있는 나이 든 사람 특유의 분위기는 전혀 없고, 젊고 팽팽한 모습에 대비되는 늙은 목소리는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요즘의 전반적인 추세가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동안(童顔) 신드롬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정신적인 깊이가 받쳐주지 못하는 외모만의 돌출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젊음이 그저 주어지는 축복이라면 늙음이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유유자적 편안하게 늙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집스럽고 괴팍하고 노욕(老慾)을 주체하지 못해서 추하게 늙어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오감(五感)의 민감도가 떨어진다. 소위 말해서 감각의 센서가 둔해진다. 가장 큰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성욕의 둔화가 가장 현저해진다. 늙은 사람이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을 노욕(老慾) 또는 노탐(老貪)이라고 하는데, 노탐이 강해지는 가장 큰 원인이 성욕의 감퇴라고 한다. 나이 들어 성욕이 감퇴하기 시작하면 노탐이 생기기 시작한다. 돈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하게 된다.

   사주명리학에서 재(財)는 돈과 성욕을 같이 의미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성적인 욕망의 충족이 어려워지면 물질적인 재물의 소유로 성욕을 대체하려고 한다. 감각의 마이너스 부분을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 약간 치매기가 있는 할머니가 있는데, 이 할머니는 온 종일 동네를 쏘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풀숲을 헤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비닐 봉투에 주워 담는다. 심지어 남의 집에 들어가 화장지나 비누, 치약 같은 사소한 것들을 훔치기도 한다. 그렇게 줍거나 훔친 것들을 자신의 방에 잔뜩 쌓아 두고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한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들 중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을 숨겨 뒀다가 크게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노탐일 수 있고, 돈 많은 부자들 중에 자식하고 재산 문제 때문에 크게 다투거나 심지어 자식이 부모에게 위해를 가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 혹시 부모의 노탐 때문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나이가 듦에 따라 눈은 침침해지고 귀도 어두워지고 입맛도 예전 같지 않으며 성적인 욕망도 잦아든다. 이렇게 신체적인 감각이 둔해지는 이유가 뭘까? 이제 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정신세계로 들어가라는 자연의 명령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외부로 향하는 감각의 문을 서서히 닫고 자신의 내면을 주시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물질세계에서 부대끼면서, 감각의 문을 통해 들어 온 엄청난 양의 정보를 이제부터는 정리해서 정신적인 상승의 자양분으로 삼으라는 얘기다.

     의식의 초점이 외부에서 내면으로, 감각에서 정신으로, 원심력에서 구심력으로 옮겨가면 우리는 대체로 긍정적이며, 원만하며, 편안하고 자애로워진다. 자기 세계가 구축되어 지혜가 생기며, 세상사 모든 일에 담담해져 감정적인 동요를 크게 겪지 않는다. 그리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현명함을 갖추게 된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행동거지가 편안하고 자애롭고 안정되어 있다.

     젊음의 모습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아도 획득되는, 저절로 주어지는 행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 들었을 때의 모습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자신이 살아 온 삶의 궤적이 그대로 바깥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난다. 노쇠해지는 모습이 보기 좋은 경우는 없다. 우주 만물이 다 그렇다. 생기를 잃고, 거칠어지고, 퇴색되고, 균형을 잃은 모습이 된다. 이렇게 추해지는 늙음의 대열에서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갈고 닦아 새로운 보석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름다운 노년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견뎌, 은은한 광휘를 발하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하여 후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오감의 굴레에 갖혀 있던 우리의 의식을 이제는 자유롭게 할 때다. 신체적인 감각에서 벗어나면 우리의 의식은 엄청나게 확장될 것이며 진리를 체험하고 지혜를 획득할 것이다. 이제 물질적인 욕망을 서서히 버리고 감각의 퇴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는 노력을 하고 세상의 시시비비에 한 발 물러서자.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그 내면의 찬란한 빛을 발견하자.

     아름다운 노년은 내가 노력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절대로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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