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조화와 균형이 우주 변화의 근본 원리이다.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 우주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소우주인 인간의 삶도 조화와 균형의 원칙으로 규정되어 있다. 우리가 운이 좋다는 것은 조화와 균형의 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고 운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조화와 균형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주에서 , 그 사주의 주체가 되는 일간(日干)의 강약과 사주 전체의 음양을 파악해 용신(用神)을 결정하는데 이 용신이 그 사주의 균형점이 된다. 용신이 강해지는 운이 오면 사주 전체가 조화와 균형의 상태가 된다. 이 시기가 행운의 시기이다. 그런데 용신이 파괴되고 약해지는 운이 오면 조화와 균형을 잃은 상태가 된다. 이 시기가 불운의 시기가 된다.
대운(大運)과 세운(歲運)은 육십갑자의 흐름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위적으로 운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런데 좋은 운의 상태가 조화와 균형의 상태라는 것을 알게되면 우리는 생활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정도 운명적인 결점을 보완해서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음양은 우주 변화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음양의 결합으로 만물이 생성되고 음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우주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불교의 중요한 진언 중에 '옴마니반메훔' 이라는 진언이 있다. 관세음보살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六字大明王眞言)이라고 한다. 천수경에 있으며 탄트라 불교에서는 일상적으로 입에 붙어 있는 진언이다. 여기에서 '옴' 은 '아(A)', '오(O)', '움(M)' 의 합성어인데, '아(A)' 는 생성(生成) '오(O)' 는 성장(成長), '움(M)' 은 소멸(消滅)을 뜻한다. 옴은 불교에서만 쓰이는 진언이 아니고 기독교의 아멘, 우리 민족종교 등에서 일컫는 소울음소리(牛鳴) 등도 옴과 같은 의미이다.
옴의 뜻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나서 자라고 죽는다는 것이다. '마니' 는 보석을 의미하며 양(陽)을 뜻한다. '반메' 는 연꽃이며 음(陰)을 의미한다. '훔' 은 조화를 뜻한다. 즉 옴마니반메훔은 이 세상이 음양의 조화로 생성 성장 소멸한다는 의미이다. 우주의 보편적인 진리를 얘기한 것이다. 흔히 옴마니반메훔을 연꽃 속의 보석이라고 얘기하는데 정확한 뜻은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티벳 불상들은 남녀 교합(交合)의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이것 역시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탄트라 불교가 마치 남녀의 성적인 행위를 통해 수행을 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전 우주적인 음양의 밸런스를 표방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태극기의 태극 문양, 기독교의 십자가, 불교의 만(卍)자, 이스라엘 국기에 그려져 있는 다윗의 별과 같은 의미이다. 모두 음양의 조화와 결합을 상징한다.
티벳 불교의 탱화를 보면 보석이 박힌 반야의 검이 연꽃 속에 푹 박혀있는 그림이 많다. 역시 음양의 조화, 음양의 결합으로 생성되는 만물을 상징하고 있다. 음양의 조화로 나고 성장하고 죽는 것이 바로 우주의 실상이고 진리라는 뜻이다. 객관성, 보편성, 항상성(恒常性)이 진리의 조건이라면 태어나서 성장하고 소멸하는 것이 가장 진리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조화롭게 하면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가 있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 우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우리가 질병으로 인해 신체적인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분명히 우리 몸의 음양 균형이 깨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신의 사주를 잘 분석해 보고 자신의 생활 태도를 면밀히 관찰해 보면 어느 부분이 넘치고 어느 부분이 모자라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넘치는 것을 덜어내고 모자라는 것은 채워 주면 조화를 이루게 된다.
먼저 식생활의 불균형이 매우 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병의 가장 큰 원인은 식생활이다.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편중되게 먹어서 병이 생긴다. 음식으로 인해 생긴 병은 음식으로 치료해야 한다. 의식동원(醫食同原)이라고 음식이 가장 좋은 약이다. 음식을 잘 먹는 것이 몸을 건강하게 하고 또한 행운을 누리게 해준다.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러 요소 중에 건강만큼 중요한 요소도 없을 것이다. 억만금이 있어도 질병의 고통에 시달린다면 그 억만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돈과 건강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 중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건강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건강이 바로 음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즘 우리는 너무 잘 먹고 있다. 잘 먹는다는 의미는 영양과잉의 상태라는 것이다. 동물성 단백질을 너무 많이 먹고, 설탕을 너무 많이 먹고, 인공적으로 기르거나 재배한 것들을 너무 많이 먹고, 식품 첨가물들을 너무 많이 먹고, 장기간 저장할 수 있게 가공한 식품들을 너무 많이 먹고, 부드럽고 연한 것들을 너무 많이 먹고, 항생제 농약등 오염물질에 노출 된 것들도 너무 많이 먹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점점 경제 규모가 커지고 소득이 향상되어 고급 먹을거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크다. 그래서 대규모 축산업이 발달하고 생산량 증가를 위해 인공적이고 계량화된 사육 방법이 적용되고 있다. 우리가 주로 먹고 있는 소, 돼지, 닭 등은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많이 진화되어 있는 동물들이다. 신경계도 많이 발달해 있어 고통에 대한 민감도에 있어 거의 인간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그런 동물들을 공장에서 물건 찍어 내듯이 키우고 도살하고 있다. 물론 축산물을 먹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먹기는 하되 너무 많이 먹지 말자는 얘기다. 지금은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을 걱정하고 성인병을 걱정하고 암을 걱정하고 있다. 조화와 균형의 관점에서 보면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가 너무 많다.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질병들이 현대인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아예 거부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물론 고기를 먹으면 신체적인 과민반응이 생겨 고통스럽다거나, 종교적인 계율 때문에 고기를 멀리할 경우는 어쩔 수 없다. 그런 경우도 아닌데 고기를 안먹는 사람들이 있다. 채식이 건강에 좋고 채식을 해야 암이나 성인병을 예방하고 심지어 치료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채식을 하면 정신이 맑아지므로 명상이나 수행을 하는 사람은 필히 채식을 해야 한다고 한다. 또 고기를 먹으면 그 동물의 원한이 까르마의 형태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불행을 겪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은 초식동물이 아니다. 야채와 곡식도 먹고 짐승도 잡아 먹고 물고기도 잡아 먹는 잡식성이다. 수백만 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 그렇게 먹는 것이 우리 몸에 가장 좋기 때문에 잡식성의 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채식이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식생활이라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 한 쪽으로 편중돼 있고 조화와 균형을 이탈해 있다. 채식만으로 절대 건강해질 수 없다. 채식과 육식의 적절한 조화만이 우리를 건강하게 해 줄 수 있다.
돈만 있으면 고급 먹거리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특수한 사료에 클래식 음악을 듣고 마사지를 받은 한우 고기, 버섯의 제왕 송로버섯, 캐비어, 한 점에 수 천원하는 다금바리 회, 자연산 송이버섯, 한 병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와인 등 옛날에는 왕이나 귀족들이나 맛 봄직한 고급 먹거리를 일반 서민들도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음식의 사치가 심해지고 있다.
운명에 관련된 고서들에는, 운명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단식을 하거나 먹는 것을 소박하게 하라는 내용이 있다. 거칠고 소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고, 그것도 많이 먹지 말고 소식하라고 했다.
소박한 생활이 복을 부른다. 아껴쓰고 고쳐쓰고 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어야 잘 살게 된다. 사소한 것, 몇푼 되지도 않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까짓것 아껴 무슨 큰 돈이 되겠느냐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몇푼 되지 않는 사소한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소박한 생활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 소박한 생활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물질적인 복을 어느 정도 희생하는 것이다. 감각의 충족을 너무 질탕하게 해버리면 행운이 빨리 소진되어버리고 오래 가지 않는다. 희생을 한다는 것은 아껴 쓴다는 의미이며 그런 삶의 태도가 행운을 불러온다.
요즘은 아파트 평수가 부의 척도가 되는 세상이다. 큰 평수의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이 바로 부자로 인식된다. 넓고 호화롭게 지어진 아파트에서 두 세 명의 식구가 살고 있다. 집 내부를 꾸미는 자재들은 호화의 극치를 달려 마치 궁전이나 고급 호텔을 연상시킨다. 호화로운 가구와 번쩍거리는 조명, 현란한 벽지, 고급 목재 바닥,대리석으로 휘감은 욕실 등 호화롭기 그지없다. 어떤 집은 사람이 생활하는 집이 아니라 마치 룸싸롱 같은 느낌이 들게 꾸며져 있다. 색(色), 각(角), 빛(光)이 사람을 편안하게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들떠서 부산스럽게 만들고 있다.
집이 너무 커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집의 위세에 눌리면 좋지 않다. 사람의 기운이 충분히 집을 장악해야지 사람이 집의 기운에 눌리면 안된다. 사람이 집의 기운에 압도 당하면 건강상 문제가 생기거나 집에 들어가기 싫어지고 밖으로 나돌게 된다. 집에 기운을 뺏기므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없고 하는 일도 어려워진다.
너무 호화로운 장식도 좋지 못하다. 집 내부는 편안하고 단순한 것이 좋다. 건축업자들의 상술로 인해 요즘은 경쟁적으로 아파트 내부를 호화롭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도 미흡해서 전부 뜯어내고 다시 인테리어를 한다. 자원 낭비도 심하고 이중 삼중으로 돈이 들어간다. 그런 호화로운 장식이 기운을 분산시키고 기운을 탁하게 만든다.
'꼴값' 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형상이나 모양이 가지는 가지는 기운이다. 무당집처럼 요란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곳에는 그런 정신 사나운 기운이 형성된다. 기운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편안해지지 않고 들떠서 흩어져버린다. 그런 속에서 오랫동안 살게 되면 우울증 등 정신병을 앓을 수도 있다. 적당한 크기의 아담한 집에 단순하고 편안한 실내 공간이 좋다. 그런 집이 복을 부른다.
지금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를 한껏 누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집집마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고 거의 전 국민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으며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다. 옷이 넘쳐나고 멀쩡한 옷들이 유행이 지났다고 버려지고 있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겨울에 반팔 속옷 차림으로 지낼 정도로 난방을 해댄다. 소비가 미덕으로 통한다. 그러나 과소비는 우리가 다음 생에 쓸 것을 이번 생에 다 써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물질적인 풍요는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 주고 감각의 충족을 확대시킨다. 그러나 생활의 편리함이나 감각의 충족은 그 끝이 없다. 더 편해지기를 원하고 더 큰 감각의 자극을 추구한다. 물질적인 풍요는 오히려 더 큰 결핍감을 초래한다.
옛날 라디오가 귀한 시절에는 라디오만 한 대 있어도 정말 좋았다. 그러다가 흑백 T.V가 나왔는데 정말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한 동네에 T.V가 한 두 대 밖에 없을 때 사람들은 눈치 코치 무릅쓰고 T.V 있는 집으로 모여 들었다. 칼라 T.V가 나왔을 때 그 현란한 색채에 환호했고 요즘은 H.D T.V가 보편화 되었고 3D T.V가 선보이고 있다. 흑백 T.V에 감격해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아날로그 칼라 T.V 정도는 시큰둥하다. H.D T.V의 선명한 화질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3D T.V의 입체감을 즐기려 한다. 이제 3D T.V를 갖지 못하면 상대적 결핍감을 느끼는 시대이다. 감각의 영역은 끝없이 확장되고 감각은 절대로 충족되지 않는다. 감각만을 충족시키려하다 보면 평생을 결핍감에 허덕이다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적당하게 절제하면서 평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다 보면 삶은 어느 듯 편안해지고 안정되기 시작한다.
마음이건 생활이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어려워진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것이 우주의 진리이고 소우주인 인간이 견지해야 할 삶의 태도이다. 옴마니반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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