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말한다

무상(無常)과 변(變)

금린학당 2012. 12. 30. 12:14

     마루에 들여놓은 매화분에 꽃망울이 맺혀 터질듯 부풀어있다. 작은 화분에 심어 둔 자란도 뾰족한 새싹을 내밀고 있다. 지난 가을, 매화분은 무성한 가지를 전지(剪支)하고 수형(樹形)을 다듬었고 자란분은 시든 꽃대를 잘라내고 알거름을 얹어 얼지 않도록 마루 안쪽으로 들여놓았었다. 바깥은 얼음이 꽁꽁 얼어 수련을 심어 둔 옹기 그릇에 얼음이 두껍게 얼어 솟아오를 정도인데 얇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에 있는 꽃들은 왕성한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해마다 1월 1일 쯤 매화가 만개했었는데 올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매서운 겨울의 한가운데서 매화의 청향(淸香)을  만끽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꽃은 피었다 지고, 다시 새싹을 내밀고 무성하게 잎을 키운다.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은 온다. 인간과 자연, 심리든 물리든 세상의 모든 사상(事象)과 물상(物象)은 변한다. 우주 만물, 우주 만상은 머물러 있지 않는다. 어떤 현상이든 어떤 경계든 변하기 마련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집착하고 매달린다. 어떤 경계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물리, 어떤 심리가 영원하리라 믿는다. 어떤 존재가 변함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을 믿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머물지 않고 변한다는 것 그것이 진리이다. 역(易)에서는 이 이치를 '변(變)' 이라 했고 불교에서는 '무상(無常)' 이라 했다. 사실은 역(易)이라는 글자 자체가 바뀐다, 변한다는 의미이다. 불교의 가장 주요한 교리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것이 결국 인연에 의해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한다는 의미이다. 물리학적인 관점에서도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있다. 잠시도 머물러있지 않는다.

     인간은 유일하게 이 우주에서 지혜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다. 지혜를 가지고 있는 인간 중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변화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이다. 그리고 변화의 전면에서 변화를 선도하는 사람이다. 변화의 이치를 터득하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끌려가고 매달려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주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결코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변화의 이치를 깨달아야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가?

     먼저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음양오행론이 이론의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변화의 이치에 관련된 학문이다. 어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보다 더 정확하게 변화의 추이를 가늠할 수 있다. 미시적 관점 뿐만 아니라 거시적 관점에서도 변화의 프로세스를 비교적 정확하게 읽어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론이 가지는 한계는 반드시 있다. 개별적인 변화의 구체성은 천변만화(千變萬化)하므로 도식화된 이론 만으로는 전부를 읽어내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론을 통해 우리가 근접할 수 있는 부분은 변화의 70 내지 80퍼센트 정도만 알아낼 수 있다. 나머지는 아무리 이론적인 능력이 뛰어나도 알아낼 수가 없다. 그 나머지를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이 수행(修行)이다.

     나의 스승님의 가르침은 이랬다.

     수행은 온전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고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영웅은 세상을 경영하고 지배하는 자이지만 성인은 자신을 지배하고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이 누군지, 자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성인이다. 수행의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의식을 자신의 몸에, 자신의 행위에 완벽하게 집중하는 것이다. 의식이 온전하게 자신에게 집중될 때 의식의 무한한 확장, 에고라는 개체의식의 희석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프레임에 갖혀있는 자아의 해방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스승님은 변화를 체지체능(體知體能)하셨다. 막연하고 관념적인 자각이 아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혜를 보이셨다. 정말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엄동(嚴冬)이라는 극음(極陰)의 밑바닥에서 일양시생(一陽始生)의 변화가 꿈틀대고 있다. 변화를 감지하고 변화를 선도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새롭게 펼쳐질 국면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새날이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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