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말한다

입설단비(立雪斷譬) -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까?

금린학당 2012. 5. 1. 14:47

     선종(禪宗)의 이조(二祖) 혜가(慧可)는 치열한 구도의 역정에서 달마조사를 찾아갔다. 달마에게 가르침을 청했으나 달마는 못본척 했다. 혜가는 추운 겨울, 내리는 눈 속에서 꼬박 사흘 밤낮을 서 있었으나 달마는 거들떠도 안 봤다. 진리는 오랜 세월 많은 정성을 들여야 얻을 수 있는데, 불법(佛法)은 무상(無上)의 대법(大法)이라 쉽게 얻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말을 듣고 혜가는 자신의 팔을 댕겅 잘라 달마에게 내밀었다. 이만하면 되겠느냐고. 드디어 달마는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달마가 혜가에게 물었다.

     "그대는 뭘 원하는가?"

     혜가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까?"

     "그대 마음을 보여줘보게. 그러면 내가 편안하게 해 줄 것이네."

     한참을 궁리하던 혜가가 대답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이미 편안하네."

 

    

2조(二祖) 혜가는 눈 속에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도(道) 공부 하기를 청했다는데

나는 무슨 그리 독한 비원도 이미 없고

단지 조금 고적한 아침의 그림자를 원할 뿐

아름다운 것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만나

밤 깊도록 겨울 숲 작은 움막에서

생나무가지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저 묵묵히 서로의 술잔을 채우거나 비우며

 

다음 날 아침이면 자기 팔뚝을 들고 선

정한 눈빛의 나무 하나 찾아서

그가 흘린 피로 따뜻하게 녹아있는

동그라한 아침의 그림자 속으로 지빠귀 한 마리

종종 걸어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싶을 뿐

작은 새의 부리가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손가락 하나 물고 날아가는 것을

고적하게 바라보고 싶을 뿐

 

그리하여 어쩌면 나도 꼭 저 나무처럼

파묻힐 듯 어느 흰 눈 오시는 날

마다 않고 흰 눈을 맞이하여 그득그득 견디어 주다가

드디어는 팔뚝 하나를 잘라 들고

다만 고요히 서 있어 보고 싶은 것이다

 

작은 새의 부리에 손마디 하나쯤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김선우 <입설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