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린학당 2012. 2. 22. 22:56

    

 

 

나와 무관하게

꽃은 저 혼자 피어 있는데

내가 괜히 곱다느니 향기롭다느니

호들갑 떨고 있다

그저 수정(受精)해서 씨를 맺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는데

곱고 자시고 할 게 무어 있는가

꽃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내가

고통의 칼날 위를 걷고 있던

어느 해 봄날

묘관음사 향곡스님 부도 옆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일어설 기력도 없이 퍼지르고 있을 때

산벚꽃 난분분 떨어져

내 머리 위

내 어깨 위

살포시 내려 앉았지

 

세상의 끝에

외톨이로 밀려나

오직 내 그림자만 곁에 있을 때

꽃잎

말 없이 떨어져

나를 어루만져 주었지

내 곁에 있어 주었지

 

황사의 사막에서

나는

연분홍 꽃잎으로 숨을 쉬었지

그저 저 혼자 피어 있는 꽃이었지만

그래도 내겐 생명이었지

낯선 길 어둔 길에서 꽃잎은

빛처럼 휘날렸지

 

그는 그저 피어 있고

나는 이만치 떨어져 있어도

꽃은 핀다

세상의 한복판

운명처럼 꽃은 피어 있고

운명처럼 나도 산다

4월이 오면

난분분

산벚꽃 떨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