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이다. 나도 어머니가 별세하신지 20년이 훌쩍 넘었건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줄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정말 격변의 시절을 살아내셨다. 이민족에게 나라를 침탈 당해 식민지가 되는 고초도 겪었고, 자연재해와 수탈로 기아에 허덕이기도 했고,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명의 위협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나의 어머니는 1917년 생으로 뱀띠이시다. 살아계셨으면 우리 나이로 올해 95세가 된다. 구순이 훨씬 넘은 어르신들이 살아계신 걸 볼 때마다 나는 우리 어머니도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안타까워하고 부러워한다.
우리 어머니는 나주 임씨 연(淵)자 심(深)자 이름을 쓰셨다. 19살에 20살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시집왔다고 한다. 그 당시로는 늦은 결혼이었다고 했다. 선대에 만호 벼슬을 했던 집안이라 남자 형제들과 함께 서당에서 공부를 했다. 시집올 때 그 당시 유행하던 이야기 책을 한아름 가지고 왔는데, 우리 고모님들의 전언에 의하면 어머니가 가지고 온 이야기 책을 온 동네 사람들이 돌려가면서 읽었다고 했다. 우리가 어릴 때 어머니는 자주 명심보감에 나오는 여러가지 글귀들을 일러주셨다. 한시도 매우 좋아하셨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가 만든 부채가 여러 개 집에 있었다. 흰 창호지를 바른 부채였는데 내가 그 부채를 들고 소를 먹이러 다니면서 부채에다 그림을 그렸다. 소도 그리고 소나무도 그리고 풍경도 그렸다. 그리고 거기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한시를 써 두었다. 우리 어머니가 그 한시들을 보시더니 줄줄 해석을 해 나갔다.
종가집 맏며느리로 시집 온 우리 어머니는 평생을 등이 휘도록 일만 하고 가셨다. 시조부모, 시부모, 9명의 시형제, 당신의 자식들 7남매를 모두 수발하고 부양하면서 평생을 보내셨다. 하루도 마음 편안한 날이 없이 노심초사하면서 발 동동 구르며 사셨다. 궁벽한 시골의 살림에서 해마다 잔치를 치르거나 장례나 소상을 치뤄냈다. 당신의 살림은 아끼고 아끼면서도 동네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몰래 쌀을 퍼다주곤 했다.
나의 당숙 어른들 중 나병에 걸린 분이 한 분 있었다. 그 당시 나병은 천형으로 여겨, 가족과 떨어져 집단 수용 됐다고 한다. 그 당숙이 가끔 우리집을 찾아왔다. 아무리 가족끼리의 유대가 끈끈한 시대였어도 나병에 대한 공포와 경계는 어쩔 수 없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를 피하고 꺼렸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그 분이 올 때마다 아버지와 겸상으로 밥상을 차리고 꺼림칙해 하는 아버지를 단호하게 나무라며 같이 식사를 하시게 했다.
내가 어릴 때, 도회지에 나가 살고 있던 숙부님들 중 두 분이 폐결핵으로 차례 차례 고향으로 요양을 왔다. 그 병수발을 우리 어머니가 다 했다. 큰 숙부님은 병이 위중해 각혈을 했는데 타구에 뱉어놓은 피와 가래를 어머니가 전부 비우고 씻었다. 어머니는 아무런 불평도 없이 그 일을 묵묵히 해 내셨다. 환자의 배우자나 친동기간에도 하기 어려운 일을 어머니는 당연히 당신이 해야 할 일인 것처럼 했다.
어머니는 69세에 돌아가셨는데, 당신의 목숨과 심장병을 앓고 있던 어린 손녀의 목숨과 바꾸기를 강하게 염원하시다 당신의 뜻대로 손녀는 살아나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자식이 없던 큰 형님이 늦게 딸을 얻었는데 이 아이가 심장병을 앓았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 수술을 했는데 아이가 혼수상태에 빠져 며칠을 깨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혼수상태가 길어지자 병원에서도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당신을 데려가고 손녀를 살려달라고 절절하게 염원했다. 아이는 기적처럼 깨어났고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살아 온 시대와 맞물려 어머니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나름대로 행복했던 일상도 있었겠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삶을 조망해 보면 눈물만 흐를 뿐이다. 고통 속에서 엄청난 영적 진화를 하셨으리란 짐작으로 위안을 삼는다. 다음 생은 정말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빌고 또 빈다. 어디서 어떤 인연으로 나의 어머니를 만날런지 모르지만, 전생에 나의 어머니였슴을 꼭 알아차리고 이번 생에 내가 못했던 효도를 꼭 하고싶다.
나훈아가 부른 ' 홍시 ' 라는 노래를 나는 좋아한다. 그러나 그 노래를 끝까지 부르진 못한다. 목이 메어서.....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 주던
울엄마가 생각이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새라
비가 오면 비 젖을 새라
험한 세상 넘어질 새라
사랑 땜에 울먹일 새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회초리 치고 돌아앉아 우시던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바람 불면 감기 들 새라
안 먹어서 약해질 새라
힘든 세상 뒤처질 새라
사랑 땜에 아파할 새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울엄마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