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말한다

6. 불행과 고통

금린학당 2010. 9. 5. 21:43

     불행하다는 얘기는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고통 속에 있다는 얘기다. 불행을 파악해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불행을 파악하려면 고통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인간은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 보다 훨씬 더 고통에 민감하다. 인간은 고통에 민감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고통에 민감한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 고통은 육체적 진화 뿐만 아니라 영적인 진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는 영적인 성장이 매우 중요하므로 더 많은 고통에 노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생명체의 특징을 보면 자기복제, 영양 섭취와 대사, 자극에 대한 반응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인간도 이런 생명체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명체의 특징을 충족 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 비해 훨씬 많은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다른 생명체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삶이 복잡할수록 고통의 양상도 넓고 깊어지게 된다. 삶이 복잡하다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것이고 역설적이게도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다양할수록 고통은 증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단순하다. 자기복제를 위해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아 기른다. 영양 섭취를 위해 먹이를 찾아 다닌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영역을 침범한 다른 개체와 싸우기도 한다. 고뇌에 찬 동물은 없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수천만 분의 일도 동물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단순하게 살아가고 있다.

 

     문명인으로부터 수십만 수백만 명이 죽는다는 전쟁 얘기를 들은 식인종이 말했다. '당신들은 사람을 먹지도 않는다면서 왜 그렇게 많이 죽이느냐?'

     전쟁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 가장 비참한 고통이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는 거의 전부가 전쟁의 역사이다. 이 지구 상에서 하루라도 전쟁이 그친 날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세상의 어느 곳에선가 전쟁이 벌어져 살륙이 행해지고 있고, 이 지구 상에는 전 인류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핵무기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인간의 역사는 고뇌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인간의 삶은 고뇌와 고통의 연속이다. 잠깐 짧은 행복이 사탕처럼 주어지지만 대부분 쓰디 쓴 고통의 나날이다. 인간은 스스로 고통을 만들고 그 속으로 뛰어 들고 있다. 고통을 스스로 만든다는 얘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인간은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는 얘기에는 동의할 것이다. 행복을 위한 노력이 결국 고통을 만드는 노력으로 변질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행복은 세속적인 행복, 본능을 충족시키는 행복이다. 이런 행복은 그 범위가 확장되는만큼 고통의 범위도 커진다. 따라서 세속적인 행복을 위한 노력은 결국 고통을 만드는 노력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러나 고통이 꼭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각의 충족을 위한 세속적인 노력으로 인한 고통은, 감각의 충족이 가져다 주는 부정적인 측면을 깨닫게 해 준다. 세속적인 행복을 위한 노력이 고통을 야기하면 우리는 정신적인 측면의 행복에 눈을 돌리게 된다. 감각이 요구하는 욕망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절제하게 되고 삼가하게 된다.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겪는 고통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손 끝에 작은 가시 하나 박혀도 신경 쓰이고 힘든데, 중병에 걸리거나 신체적 장애가 생길 정도의 큰 사고 등으로 발생하는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신체적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것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 때문이다. 신체가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즉시 강한 아픔을 느껴야 손상을 복구하려고 하고 신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신체가 손상되는데도 별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애써 손상을 복구하려고 시도하지고 않고 조심도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게 된다.

 나병 환자들은 통증에 대한 감각이 둔해진다고 한다. 불 속에 손을 넣어도 뜨거운 줄 모르고 살이 깎여 뼈가 드러나도 아픔을 못 느낀다고 한다.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전라도 길' 중 일부이다. 발가락이 괴사 되어 떨어져 나가는데도 아픈 줄 모른다.

     당뇨병도 몸에 특별한 고통이 수반되지 않으므로 발견하기 어렵고 방치하기 쉽다. 심각한 합병증이 생기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지만 대부분 병이 너무 진행되고 난 후이다. 고통이 있으면 그 고통 때문에 몸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몸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요하다. 배고픔, 피로감 등도 몸을 보호하기 위한 고통이다.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은 자칫하면 영양실조에 걸려 몸이 손상될 수 있고, 피곤을 모르는 사람은 에너지가 소진되어 쓰러질 수 있다. 잔병치레 하는 사람이 수명이 긴 경우가 많다. 잔병 때문에 평소에 꾸준히 몸을 돌보기 때문이다.

 

     신체적 장애는 우리의 삶에서 대단히 큰 불행으로 간주된다. 선천적 장애도 그렇고 사고 등에 의한 후천적 장애도 마찬가지다. 특히 건강한 몸으로 살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서 중증 장애인이 된 사람들의 절망감은 이만 저만 큰 것이 아니다. 실명을 하거나, 얼굴 모습이 크게 훼손되거나, 신체 운동 기능이 상실되거나, 사지 중 일부를 상실하는 등 이런 신체적 장애로 인한 충격은 엄청나다.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씨의 인터뷰 기사가 2007 년 12 월 8 일자 조선일보에 실려 있었다. 운명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기사를 읽고 감탄했다. 운명의 격랑을 그녀는 능수능란하게 타 넘고 있었다. 더 이상 삶의 문제에 끄달리지 않고 있었다. 치명적인 사고와 치명적인 훼손을 통해 그녀는 저 깊은 자성(自性)의 언저리에 도달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 그녀의 얼굴은 매우 예쁜 편이었다. 그러나 자동차 사고에 의한 화상으로 그녀의 얼굴은 심하게 훼손됐다.

     조선일보 기사를 발췌했다.

 

     이지선은 이화여대 4 년 때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그녀의 표현을 옮기면 "병실에서 언제 끝이 날 지 모르는 싸움을 시작한 나는 더 이상 이지선이 아니라 'BURN(화상)'으로 불렸다. 여덟 개 손가락의 절단으로 지문도 없어져 나만의 고유성을 보여줄 지문도 잃었다"고 했다.

     그동안 20여 차례의 수술도 받았다. 지금도 방학 중에는 재건 성형수술을 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솔직한 얘기를 인터넷에 올려 화제가 됐고, 그 뒤  '지선아 사랑해' 라는 제목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해 TV의 '인간극장'에도 소개됐다.

     그녀는 미국 보스턴대에서 석사과정에 있고 박사과정을 계속 밟을 예정이다. 보스턴 대학과 온누리교회에서 주는 장학금, 인세 등으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TV에서 제 얘기를 '인간극장' 으로 찍을 때(2003년), 제작팀에서 '콘티'를 짜왔어요. 제목이 '울지마 지선아' 였어요. 저나 우리 식구들이 겉으로는 밝은 체 하지만, 실제는 남몰래 슬픔으로 지새우는 줄로 알았나 봐요. 그렇게 '신파' 쪽으로 생각을 하고 오셨는데, 도통 안 우니까 나중에는 제목도 바꾸고 다 바꿨어요. 지금은 많이 회복돼서 웬만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옛날에 진짜 아팠을 때도 종일 침울했을 때도, 늘 감사하고 기쁜 것을 찾았던 것 같아요."

     ㅡ 그 상황에서 무슨 기쁘고 감사할 게 있나요?

     "안그러면 살 수 없었으니까요. 죽는 것 보다 사는 것이 훨씬 어려워요. 포기하는 게 더 쉽죠. 그만 죽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상황이었죠. 그래도 사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지만, 사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ㅡ 살고 싶다는 의욕도 거울을 보면 번번이 좌절 되지 않았나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정말 이 얼굴로 어떻게 살아요? 그러니 감사하고 기뻐할 것을 찾아야지, 만약 감상(感傷)과 우울한 기분에 빠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밖에는 답이 없어요. 그래서 거울을 보면 '이 얼굴로 어떻게 살아' 가 아니고, 솔직히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꽤 귀엽다' 이런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이 얼굴을 내 걸로 그냥 받아들였던 거죠."

     2000 년 7 월,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귀가하는 길이었다. 그녀가 탄 차는 신호선에 멈췄다. 그때 음주운전자의 차가 뒤에서 들이받았다. 그녀는 정신을 잃었고 차는 폭발했다. 짧은 순간이 운명을 바꾼다. 그녀는 전신 55 퍼센트에 3 도 화상을 입었다.

     "한번은 TV를 보다가 혼자 재미있어 웃다가, 내가 더 이상 이런 것을 아무 생각없이 재미있어 하는 시절이 지났고, 영화 같은 사랑 이야기에 가슴 아파할 수도 없고, 난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나는 전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어요."

     "저로 인해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것이 싫었어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그렇게 걱정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도 않고, 오히려 저도 같이 우울해지니까, 저는 계속 농담하고 다른 사람들을 일부러 놀리고 웃고 그랬어요."

     "감정의 과잉이 싫었어요. 내게 생긴 일들을 부인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과소 평가 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지요. 얼굴은 이만큼 남아 있고 ---. 그렇게 받아들이는 데는, 어떤 막연한 믿음이 아주 컸어요."

     ㅡ 막연한 믿음이라면?

     "당초 제 손가락이 모두 절단될 줄은 몰랐어요. 그전까지 붕대에 감긴 오른손을 전혀 쓸 수가 없었어요. 손가락이 끝까지 다 있었지만,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 거예요. 모양만 있으면 뭐하나 싶어, 수술을 받고 손가락이 짧아지더라도 움직일 수는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다음 날 수술실에 들어갈 때까지 오른손가락만 자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양손을 다 해야 되는 것이었어요. 정상이라면 거의 패닉 상태일 수밖에 없잖아요. 오른손을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왼손도 잘라야 한다 ---. 막 울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어요."

     ㅡ 그건 체념의 힘인가요?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린 적이 없으니, 체념은 아니예요. 당시 수술실로 들어 가면서 '오빠가 나를 좀 더 늦게 구했다면 팔 전체를 다 잃을 수도 있었는데, 여기까지만 자르는 것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께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거든요. 모르겠어요. 원래 성격이 낙천적인가 보다,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하세요. 하지만 이게 정말 낙천적인 것으로만 되는 거 같지는 않아요."

     ㅡ 가해자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은?

     "가해자 존재를 그냥 잊고 살았어요. 용서한다는 말을 하고 정말 용서했던 것 같아요. 이 고통 안에 가해자까지 들어올 자리가 없었던 것 같아요."

     ㅡ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할 일입니까?

     "내 인생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다가,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됐죠. 화상으로 죽음 직전에서 시작했으니 점점 좋아질 일밖에 안 남았다. 내 고통은 분명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죠. 그래서 감사했던 것 같아요."

     ㅡ 어떤 사람들은 외모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데 정말일까요?

     "누구나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것부터 인식하니까요. 그런 풍조를 따라가면 저는 계속 절망일 수밖에 없죠. 다치면서 크게 깨달았다면,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든지 없어지고 썩는다는 거죠. 그동안 내가 없어질 것을 향해서 열심히 달리고 있었던 것을 몰랐어요."

     ㅡ 그런데 사람들은 지선씨의 얼굴을 보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병원에 통원 치료를 받을 때 한 아이가 저를 보고 '괴물'이라고 했어요. 너무 충격적이어서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온 세상이 정지한 듯하고, 귓가에는 계속 그 소리만 들렸어요. 겨우 어린애의 말이었는데도. 제가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어요. 이런 아이들의 선생님이 될 수도 있는 내 아이덴티티가 어느 날 '괴물'로 되었다니. 서러워 울면서 많이 기도했던 것 같아요. 또 할머니나 아줌마들이 '젊은 여자가 쯧쯧쯧--' 혀를 차는 것도 싫어요. 내가 그렇게 동정 받을만큼 불행한가, 나는 그렇게 불행하지 않은데."

     ㅡ 그전에도 말끝마다 '감사 감사' 했습니까?

     "안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감사하다'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참 좋아요. 감사할수록 제 삶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뒤돌아 보지 않게 되고. 그렇게 한들 제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ㅡ 살면서 무엇에 가장 가치를 두나요?

     "생명이오. 감히 내가 그 사람을 다 모르면서, '나  같으면 죽었을 텐데' 라고 쉽게 말하는 식으로, 생명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어떤 사람들을 보면서 '아, 저러고도 어떻게 사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삶이 있고, 그 사람 안의 생명은 그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건데. 그 사람 안에 생명이 있다면,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이상묵 서울대 교수는 미국에서 지질 탐사를 나섰다가 사고를 당해 목 아래 모든 운동신경이 마비되었다. 다행이 생명을 건진 그는 특수하게 제작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강의를 하고 있다. 극한의 상황을 겪고 나서 그는 오히려 여유로워졌다. 팔다리를 미동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나는 행운아다. 하나를 잃고 열 개를 얻었다. 나는 장애를 기회로 만들었다. 나쁜 일을 하지 않았는데 나빠질 일이 뭐가 있겠나. 몸은 불편해도 내 인생 전체가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극복할 수만 있다면 시련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극복 못할 시련은 없다."

     그는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받아들였다.

     그의 몸은 벨트로 휠체어에 고정돼 있다. 팔다리 역시 밴드로 고정돼 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목 위 머리 뿐이다.

 2    005 년 7 월,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 지역 지질 탐사 중 그가 탄 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생겼다. 서울대 석박사 과정 학생들과 함께였다. 차량 지붕이 그의 목을 덮쳤다. 호흡이 끊기고 의식을 잃었다.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급하게 후송된 그는 수술을 받고 3 일만에 깨어났다.

     경추 손상으로 목 아래는 전신마비. 평생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판정이 나왔다. 큰 사고였지만 하늘은 이상묵 교수를 위해 상당한 부분을 남겨두었다. 폐의 40 퍼세트 정도는 온전했고 횡경막을 다치지 않아 연구와 강의를 계속할 수 있었다.

     소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요로관을 부착하고 다닌다. 요로감염을 막기 위해 2 주일에 한 번씩 요로관을 교체하는데, 간호사와 계속 농담을 주고 받으며 껄껄거리며 웃는다. 다치고나서 오히려 유머러스해졌다.

     몸은 마비됐지만 그의 영혼은 한없이 자유로워졌다.

 

     에드가 케이시에게 어느 날 어떤 중년의 부인이 찾아왔다. 에드가 케이시(1877 - 1945)는 미국 켄터키 주에서 태어난 영능력자였다. 그는 수 많은 예언을 했고,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유햇다. 그는 특히 아틀란티스 대륙에 관한 신비한 얘기를 많이 했고, 사람들의 전생과 윤회에 관해 언급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의 전생을 '리딩(reading)' 해서 현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찾아 온 중년 부인에게는 선천적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딸이 있었다. 그 딸이 그녀에게는 엄청난 불행이었다.

     "저는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어요.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어요. 나쁜 짓을 한 적도 없고 누구를 괴롭힌 적도 없어요. 그런데 왜 제게 저런 딸이 생겼을까요?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이렇지 않은데 왜 나만 이런 불행을 겪어야 될까요?"

     에드가 케이시가 대답했다.

     "당신은 수 많은 생을 아주 편안하게 살아 왔습니다. 물론 착하게 살았지요. 당신은 당신의 생활에 매우 만족해 하면서 살았습니다. 남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주변을 행복하게 가꾸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불행에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도 무관심했지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당신 자신의 행복만 지키면 되는 걸로 알았지요. 이번 생에 당신에게 장애를 가진 자식이 태어난 것은,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관심을 가지라는 메시지입니다. 장애라는 큰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의 아픔을 체험해 보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누어 짊어지라는 신의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라는 학교에서 고통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다. 고통을 통해 우리는 영적 진화를 수행하고 있다. 고통은 불행이라는 열차를 타고 우리를 찾아 온다. 운명을 알려면 불행을 알아야 하고 불행은 고통을 분석함으로써 알 수 있다. 앞으로 계속 고통에 대한 언급이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