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전직 대통령은 몇번의 대선 도전에서 실패하자 조상들의 묘를 이장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조상들의 묘를 이장한 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또 다른 유력 정치인도 두어 번 대선에서 떨어지자 조상들의 묘를 이장했다. 그는 현역 정치인이기 때문에 이장의 효력이 발생할런지 두고 볼 일이다.
조선시대 송사(訟事)의 대부분이 묘지에 관련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발복(發福)의 수단으로 풍수를 중요시한 것이었다. 풍수를 통하여 팔자를 고치려 한 것이다. 풍수를 통하여 신분 상승을 노렸고 풍수를 통하여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 그래서 길지(吉地)라고 소문난 곳을 두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남의 무덤을 몰래 파서 뼈를 들어내고 자기 조상의 뼈를 대신 묻어 두기도 하고 지세(地勢)의 맥을 위에서 끊어 자기 조상의 뼈를 묻고 무덤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다. 묘를 길지에 쓰면 반드시 발복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명당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엄청났다. 일반 백성들은 물론 양반, 심지어 왕가에서 조차 풍수는 엄청난 비중을 두고 다루었다. 그 풍수 열기는 현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암암리에 길지를 물색하고 다니고 있고 풍수 강좌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만큼 풍수가 실증적이고 효력이 인정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풍수(風水)는 글자 그대로 바람과 물을 의미한다. 바람을 가두고(藏風) 물을 얻는다(得水)는 뜻이다. 바람은 기(氣)를 흐트러뜨리고 물은 기를 모은다.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얻을 수 있는 자리는 기가 모인다. 그런 자리에 무덤을 쓰게 되면 그 무덤에 묻혀있는 조상의 뼈를 통해 후손이 그 지기(地氣)를 받아 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원리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런 원리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대단히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그렇게 난해한 이론을 충족시키는 그런 명당자리가 흔히 있을까 하고 의심되지만 사람들은 로또 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명당자리를 찾아 다닌다.
풍수지리학자인 최창조 교수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는 명당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교수의 견해에 반발하는 풍수가들도 있다. 명당은 아직도 많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물론 명당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창조 교수가 경계한 것은 오직 일가(一家)의 영화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풍수를 경계한 것이다. 또는 어설프게 지관(地官) 흉내를 내며 풍수를 혹세무민의 도구로 사용하는 자들을 질타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풍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선전하는 사기꾼들을 조심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풍수는 공간적인 구성과 배치를 통해 형성되는 기운의 정황을 읽어내는 방법론이다. 그런데 공간의 구성과 배치는 바꿀 수 있다. 특히 현대의 발달한 토목 기술과 건설장비를 이용하면 웬만한 지형은 삽시간에 바꿀 수 있다. 그래서 공간적인 기운의 성격은 어렵지 않게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에게 유리한 공간적 구성과 배치를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풍수는 적극적인 개운(改運)의 방법으로 활용할만 하다. 그러나 풍수를 통하여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풍수를 통해 운명적인 한계를 뛰어 넘을 수는 없다. 또한 풍수에는 약간은 숙명적인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명당에는 임자가 있다는 얘기다. 아무나 명당을 차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복인(福人) 봉길지(逢吉地)' 라고 했다. 복이 있는 사람이라야 명당을 차지한다는 말이다.
격암유록(格庵遺錄)을 쓴 남사고(南師古)는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최상의 명당을 잡아 묘를 썼다. 천하의 도인인 남사고였으므로 명당 중의 명당을 골라 아버지를 묻었다. 그런데 묘를 써놓고 돌아서 보니 좋은 터가 아니었다. 고심 끝에 아버지의 유골을 파서 다른 길지로 옮겼다. 그런데 그곳도 묘를 써 놓고 보니 길지가 아니었다. 또 다른 명당 자리를 잡아 묘를 써 봐도 마찬가지였다.
남사고는 아버지의 유골을 짊어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니며 명당을 잡아 묘를 쓰기를 여덟 번이나 했으나 결국은 길지를 못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하의 명당을 발견했다. 비룡승천(飛龍昇天) 형국의 길지였다. 남사고는 뛸듯이 기뻐하며 길일을 정하여 마을에 잔치를 열고 산역(山役)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유골을 아홉 번 옯기고 열 번째 지내는 장사(葬事)였다.
풍물을 잡히고 앞소리꾼의 선창(先唱)에 맞추어 산역꾼들이 봉분을 조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앞소리를 주는 앞소리꾼은 조그만 동자였다. 그 동자가 낭랑한 목소리로 앞소리를 주면 산역꾼들이 입을 맞추어 뒷소리를 받으며 흙을 다지고 있었다.
동자가 앞소리를 주고 있는데 남사고의 귀가 번쩍 뜨였다.
구천십장 (九遷十葬) 남사고야
사사괘목(死蛇掛木) 험한 땅에
비룡승천(飛龍昇天) 웬말이냐
남사고가 깜짝 놀라 지형을 다시 살피니 비룡승천이 아니라 죽은 뱀이 나무가지에 걸려있는 형국이었다. 황급히 산역을 중지시키고 아버지의 유골을 다시 파내었다. 그리고 앞소리를 주던 동자를 찾으니 동자는 홀연 사라지고 없었다. 동자가 바로 산신(山神)의 현현(顯現)임을 짐작한 남사고는 탄식하며 말했다.
"복인이 봉길지라 했거늘 내가 쓸데 없는 짓을 하고 다녔구나"
그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뼈를 태워 가루로 만들어 흩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우리나라의 풍수는 주로 음택(陰宅) 풍수였다. 즉 조상의 묘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관련된 풍수였다. 묘를 좋은 곳에 쓰면 집안이 크게 융성하고 묘를 잘못 쓰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다고 믿었다. 산소(山所)에 관련된 여러가지 금기사항도 많았다.
시골에 사는 나의 누님은 외진 산자락에 조그만 밭이 하나 있었다. 그 밭으로 가는 길이 이웃집 산소 위로 나 있었다. 어느 날 이웃집 사람이 누님을 찾아와 산소 위로 나 있는 그 길로 다니지 말고 산소 아래쪽으로 돌아서 다녀 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결혼한 자식들 중 둘이나 이혼을 하고 집안에 우환이 많아, 어디 가서 물어보니 산소 위로 길이 나 있어 그렇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말에 그 길을 다닐 수 없어 누님은 산소 아래 쪽으로 한참을 돌아 밭에 다닌다.
내가 어릴 때, 소위 말하는 '산바람' 이 나서 어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는 얘기를 어른들로부터 가끔 들었던 기억이 있다. 선산 위로 큰 길이 나자 집안의 젊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하고, 묘 이장을 잘못해서 집안이 망해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는 얘기 등이었다.
무당들도 조상 묘를 들먹거리며 겁을 주는 경우가 많다. 굿을 해라, 이장(移葬)을 해라, 부적을 써라 하면서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요구한다. 요즘은 수맥(水脈)을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산소 중간으로 수맥이 흘러 집안이 망하게 생겼으니 수맥을 차단해라 또는 이장을 해라 꼬드긴다.
풍수를 하는 사람들은 풍수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풍수를 통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장경(葬經)에 '탈신공개천명(奪神功改天命)' 이라고 했다. 풍수를 통해 신의 섭리를 조절하여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의 섭리 즉 천명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알아야 바꾸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개개인의 운명적인 구조를 천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운명적인 구조를 파악해야 어느 부분에 개조가 필요한 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운명적인 구조는 사주팔자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도가 높다. 따라서 풍수를 거론하기 이전에 사주팔자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주팔자가 좋은 사람은 어느 곳에 살아도 길지이고 어느 곳에 묻혀도 그 자리가 명당이 된다.
명당은 이론을 통해 알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기운의 흐름을 리딩(reading)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명당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기운의 흐름은 대단히 변화무쌍하고 예민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운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운이 응집되어 있는 혈(穴)을 발견한다 해도 그 기운이 오행(五行) 중 어떤 기운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떤 사람이 그 혈에 적한한 지를 파악할 수 있다. 화기(火氣)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수기(水氣)가 응집되어 있는 자리에 들어 가면 부작용이 생길 게 뻔하다. 이렇게 민감한데 정형화된 이론으로 지기(地氣)의 흐름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풍수의 대가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 기운을 리딩하는 경지까지 간 사람은 몇 사람 안 되는 것 같다. 그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이론이 필요없다. 이론을 뛰어 넘는다. 명당이라고 해서 누구나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보편적인 풍수 이론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사람마다 각각 기운이 다르기 때문에 정형화된 이론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땅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의 몸도 볼 줄 안다. 사람 몸의 기운 흐름도 읽어 낼 수 있어 몸도 치유할 수 있다. 지기가 보이면 인체의 기운도 보인다. 그래서 치료가 가능해진다. 이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은 '탈신공개천명' 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분복(分福)대로 살아가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자칫 그 질서를 흐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풍수의 대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고만고만한 사람들이다. 장님이 눈먼사람 인도하는 격이다. 그런데 풍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양 떠벌이고 다니고,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혹해서 그들을 믿고 그들에게 매달린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의 운명을 바꿔 줄 수 없다. 좋은 터를 잡아서 우리에게 행운을 만들어 줄 수 없다. 운명은 내가 지은 업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풍수를 통해 업을 바꿀 수는 없다. 적악(積惡)한 사람이 절대로 길지를 차지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복인봉길지(福人逢吉地)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가옥에 대한 풍수를 양택(陽宅) 풍수라고 한다. 양택 풍수는 생활 풍수라고 할 수 있다. 좋은 환경 쾌적한 환경이 생활 속의 풍수다. 주변의 환경과 나와의 관계에서 조화와 균형을 찾는 것이다. 조화와 균형의 상태에서 우리는 건강해질 수 있고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신체적 건강과 심리적 안정은 행운의 첫째 조건이 된다. 그래서 생활 풍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생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이 불결하고 어둡고 습하면 안된다. 깨끗하고 밝고 건조하게 주변을 가꾸어야 한다. 그럴려면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구조여야 한다. 깨지거나 찌그러지거나 손상된 부분은 빨리 복구하는 것이 좋다. 주변에 형성되는 기운도 깨지거나 찌그러지거나 손상되기 때문이다.
너무 복잡한 구조도 좋지 못하다. 장식물이 너무 많아도 안 좋다. 모양내서 집을 짓는다고 돌출에 사선에 온갖 요란을 떨고 있는데 집의 모양은 단순한 것이 가장 좋다. 적당한 비례의 직사각형 집으로 방향은 남향이나 동향이 좋다. 그러나 주변의 지형을 살펴서 향(向)을 결정해야지 억지로 남향이나 동향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지형에 따라서 서향이나 북향집이 될 수도 있다. 집의 내부는 깔끔하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하는 것이 좋다.
식물은 생기를 만들어 주므로 실내나 외부에 화초를 가꾸면 좋은데 너무 큰 나무가 주변에 있어 집의 기운이 그 나무의 기운에 눌리면 좋지 못하다. 그런 나무가 주위에 있으면 가지를 자르거나 해서 세력을 줄여야 한다.
집의 서쪽이나 북쪽 또는 집의 뒷쪽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이곳이 어둡지 않아야 하고 습하지 않아야 한다. 배수에 신경 써야 하고 너무 음습하면 밤에는 조명등을 켜 두는 것도 좋다.
출입문이 가족들이 주로 머무는 위치와 직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출입문을 통해 외부의 기운이 집안으로 들어 오는데, 우리가 주로 머무는 위치가 출입문과 정면으로 마주 본다면 외부의 센 기운에 우리가 그대로 노출되게 돼 좋지 못하다. 외부의 기운이 집안의 벽면에 부딛혀 순화된 상태가 되어 모이는 자리에 우리가 주로 머물면 좋다. 당구의 투 쿠션(two cushion) 위치 정도가 좋다.
이상의 몇가지만 주의하면 우리는 쾌적하고 안정된 주변 환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 풍수에 관련된 서적들을 보면 검증되지도 않은 복잡한 방법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 개중에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들여 온 책들을 배껴 놓았다. 무시해도 될 것 같다.
생활 풍수는 주변과의 조화이다. 사람과 자연과의 조화이고 사람과 구조물과의 조화이다. 너무 튀어도 안되고 너무 위축되어도 안된다. 우리에게 편리하도록 자연을 개발해야 하고 잘 가꾸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환경, 쾌적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것이 생활 풍수이다.
'운명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 종교 - 절 모르고 하는 시주 (0) | 2011.01.28 |
---|---|
29. 부적 (0) | 2010.12.20 |
27. 이름과 운명 (0) | 2010.11.21 |
26. 건강한 몸 가꾸기 (0) | 2010.11.13 |
25. 외모 가꾸기 (0) | 2010.11.05 |